방콕 공항의 이름이 된 이유 수완나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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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18:43
아마도 수완나부미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타이 방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방콕 국제공항의 이름이 수완나부미(수완나품)이다. 그러면 방콕이 황금의 땅일까? 방콕 국제공항은 2006년에 개항했으니 원래 수완나부미라 불리던 곳이 아니다. 방콕에 동남아의 허브 공항을 만들기 위해 처음 땅을 매입한 것이 1973년이고, 이때 수완나부미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그러면 타이는 왜 옛 지명을 버리고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황금의 땅이라는 명성을 언제 처음 얻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타이가 수완나부미를 공항 명칭으로 차용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동남아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곳이 수완나부미이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 <밀린다팡하>(彌蘭陀王問經)와 스리랑카의 역사서 <대사>(大事, Mahavamsa)에는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아소카)왕이 소나와 웃타라라는 두 승려를 보내 동남아에 불교를 전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즉 황금의 땅, 수완나부미는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다. 국교는 아니지만 국민의 95%가 불교신자인 타이가 불교 종주국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이름은 있을 수 없다. 처음 불교가 전해진 나라, 불교국가로서의 타이라는 자긍심을 수완나부미 공항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금은 동남아 여러 곳에서 난다. 미얀마 중부, 타이 푸껫과 말레이반도, 중부 베트남과 캄보디아, 필리핀 루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서부 등에서 금이 난다. 인도와 지리적 거리가 먼 필리핀이나 보르네오를 기원전부터 수완나부미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푸껫을 포함한 말레이반도 중부, 오늘날 타이와 말레이시아 접경지대가 ‘황금의 땅’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서아시아나 인도에서 배를 타고 동진했을 때, 먼저 닿는 곳이 이곳이고, 고대부터 이 지역이 교역항으로 번창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충분히 이를 입증한다. 오늘날도 인도 결혼 시즌에는 전세계 금값이 들썩인다고 할 정도이니 예나 지금이나 금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지남철 구실을 했던 것이다.
금판을 만드는 미얀마 장인들. ‘앰퍼샌드 트래블’(ampersandtravel.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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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나부미가 어디였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동남아 고대 유적에서 금은 심심치 않게 발굴된다. 인도와 가장 가까운 미얀마에서 멀리는 베트남 남부에 이르기까지 작은 파편이지만 금붙이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황금 불탑과 불상의 나라 미얀마는 말할 것도 없고, 타이 카오 삼 깨오와 베트남 남부 옥애오, 호이안 유적에서는 기원전 3세기의 금붙이가 발견된다. 동남아 최고(最古)의 유적인 옥애오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금화와 3~4세기께의 금 구슬, 얇은 판금 세공품이 발견됐다. 옥애오는 기원전부터 활발했던 동서 교류의 현장이었다.
아마도 초기 역사시대까지는 대량의 금광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대개 사금을 물에 일어 추출하는 방식을 썼을 것이다. 지금은 상업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어 쓰지 않는 방식이지만 당시로서는 특별히 전문적인 기술이 없이도 금을 구하는 방법이었다. 8세기의 인도 문헌 <사마라이차카하>(Samaraiccakaha)에는 수완나부미에서 금이 잔뜩 섞인 모래로 벽돌을 만들어 배에 싣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는 금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별다른 처리 없이도 사금을 안전하게 인도로 가져가기 위해 고안한 방편이었다.
중국 고대 사서 <진서>(晉書)에는 동남아 최초의 고대국가 푸난(扶南)이 말레이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으며, 각지에서 나오는 금에 세금을 매겼다고 썼다. 푸난은 캄보디아에서 타이, 말레이반도 인근까지 동남아 대륙부를 지배한 강대한 나라였다. <남제서>(南齊書)에는 푸난 사람들이 금으로 팔찌를 만들어 차고, 은그릇을 썼다고 나온다. 수완나부미라는 이름이 여기 나온 것은 아니지만 황금이 많이 나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