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랩, 스타트업에서 슈퍼앱으로 우뚝
chars
0
1,605
2020.12.09 09:38
말레이시아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그랩이 어떻게 단기간 내에 1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하고 14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아세안 최대 ‘데카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동남아의 기업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랩(Grab)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저개발국이 상당수인 동남아는 한국과 달리 각종 규제의 벽이 낮았던 덕분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데 최적지였고,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서도 선두에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그랩이 있다. 동남아를 방문해본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은 그랩을 이용해봤을 것이다. 어디서든 휴대폰만 있다면 앱으로 차량을 호출해 목적지까지 편안히 이동할 수 있다. 현지어를 몰라도 자동번역된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고, 자동생성된 응답 중 필요한 말을 선택해 운전자에게 보낼 수도 있다. 그랩푸드로 다양한 현지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고, 그랩마트로 장까지 볼 수 있다. 심지어 급히 보내야 할 서류는 그랩익스프레스가 처리해준다. ‘아세안의 만능 플랫폼’이 된 그랩의 시작은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아세안 최대 유니콘으로
택시를 잡기도 어려운데다 바가지요금으로 악명이 높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2012년 마이택시(MyTeksi)라는 택시호출앱이 등장했다. 앤서니 탄과 후이링 탄, 두 젊은이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은 택시예약서비스 모델을 고향에 돌아와 실제로 런칭한 것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 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는 많았지만, 택시의 참여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나 앱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택시기사들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그랩은 현장을 뛰었다. 기사들이 모이는 곳곳에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e메일 계정을 만드는 것부터 일일이 안내해야만 했다.
효과가 나타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이용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편리성과 수익성을 경험하자 이용자 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마이택시는 비슷한 교통문제를 갖고 있는 인근 국가로 시장을 확대했으며, 택시뿐만 아니라 일반 차량호출과 그랩페이 등 다른 서비스를 가미하기 시작했다. 본사는 동남아의 경제 중심, 싱가포르로 옮겼고, 마이택시라는 이름도 그랩택시(GrabTaxi), 그랩카(GrabCar)를 거쳐 현재의 ‘그랩(Grab)’이라는 브랜드로 정착했다.
설립된 지 8년이 된 지금 동남아 8개 국가(아세안 회원국 중 브루나이, 라오스 제외) 394개의 도시에서 그랩을 만날 수 있다. 모바일 다운로드 횟수는 1억9800만회를 넘었으며, 127억달러 규모의 동남아 차량호출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압도적 리딩 사업자가 됐다. 또한 음식배달의 그랩푸드와 디지털결제 그랩페이도 동남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명실상부 최대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랩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상공인은 1000만명 이상이며, 지난 1년 동안 동남아 경제 기여도는 85억달러(약 9조3500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