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인기 1위 동영상, 우리가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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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 09:50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이끌려 이들의 영상을 본 적 있다. 서너 해 전, 국내 유튜브 주제가 먹방 위주에서 일상 이야기로 넘어오던 시기였다. 취준생을 주인공으로 ‘명절 잔소리 방어법’ ‘졸업식에 간 백수의 흔한 마음’ 등 콩트를 보여주는 영상. 새로운 시도라 재밌네, 하고 잊고 지내다 최근 그들의 영상을 찾아봤더니 웬걸. 뜻밖에 그들은 말레이시아 스타가 되어 있었다. 3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국보다 말레이시아에서 더 유명한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블라이미(Blimey)의 이야기다.
크리에이터 그룹 블라이미, 최혜림·양다솔·한주희(왼쪽부터).
블라이미는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동남아 타깃의 웹 모바일 기반 예능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그룹이다. 이들의 영상이 해외에서 화제가 된 건 말레이시아 컵라면 먹방을 공개하면서다. 먹방에 이어 현지 가수 뮤직비디오를 보며 촬영한 리액션 영상이나 커버 영상으로 인기몰이를 했고, 이후 말레이시아 여행, 현지 유명인과의 협업 등을 통해 판을 키웠다. 유튜브 채널 〈블라이미〉는 12월 중순까지 등록된 영상만 380개, 구독자 수는 58만 명이 훌쩍 넘는다.
블라이미는 자신들을 ‘미디어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한다. 블라이미의 공동 대표 양다솔·최혜림·한주희는 고려대 12학번 동기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스터디에서 만난 PD 지망생 양다솔·한주희와 마케터를 꿈꾼 최혜림이 유튜브로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셋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PD 두 명을 더 기용해 신생 스타트업으로 성장 발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유튜브가 인기이니 우리도 콘텐츠를 만들어 자신을 브랜드로 키워보자는 꿈. 초기 영상은 말레이시아와 상관없이 그때그때 이슈를 따라갔다. 뷰티업계 거물 카일리 제너의 립키트를 발라본다거나, 취준생과 대학생이 공감할 만한 영상을 만들거나. 2017년 채널을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조회 수가 5000회 가까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아버지가 오랜 직장생활을 끝낸 후 설 자리가 없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회사가 아닌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유튜브를 떠올렸어요.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어 책을 내거나 굿즈를 판매하는 걸 보면서 유튜버를 직업 삼아 사업을 키워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한주희)
유튜브 채널 <블라이미>는 2017년 취준생과 대학생이 공감할 만한 주제로 시작, 말레이시아 라면 먹방으로 유명세를 탔고 이후 동남아 타깃 채널로 개편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말레이시아 인기 스타, 줄을 서시오
콘텐츠 제작은 말레이시아 여행으로 본격화했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간다고 띄운 공지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구독자들이 추천한 여행지를 블라이미가 다녀오는, 첫 소통이 이뤄진 셈이다. 말하자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영상인데,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낯선 한국인이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에 반색했다.
“공항에 내려서부터 숨 쉬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우리 모습이 재밌었나 봐요. 영상을 올릴 때마다 다음 추천이 계속 들어왔어요. 구독자들과 소통을 이끌어낸 거죠.”(양다솔)
블라이미는 매주 두세 건의 영상을 올린다. 프로젝트마다 시선을 달리하며 콘텐츠에 변화를 주는데, 이들이 기획만 하면 소위 대박이 터진다. 이들의 콘텐츠를 보자면 이렇다. 말레이시아 현지인 결혼식에서 인기 가수와 함께 축가를 부르는 깜짝 이벤트를 열고, 말레이시아 여성과 한국 남성을 소개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말레이시아식 덮밥 ‘나시르막’이나 국수 ‘락사’를 김치와 함께 요리해 대접하는 팝업 레스토랑을 여는 식이다.
지난 2019년에는 말레이시아 유명 가수 사라 수하리와 함께 한국을 여행하는 콘텐츠로 27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부산스타트업관광센터, 창원시와 함께한 ‘Trail to Busan’ 시리즈 중 하나로, 당시 말레이시아 인기 동영상 1위를 차지했다. 그때부터 블라이미 채널에 출연하면 인기가 올라간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말레이시아 유명 가수나 연예인들이 앞다퉈 출연을 의뢰하기도 한다. 지난 4년 동안 블라이미가 이룬 성과다.
블라이미의 인기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말레이시아 구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롯데타워와 남산타워 비교’나 ‘산낙지 먹방’ 등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 채널로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시청자 입장에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인기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워너뮤직에서 음반도 내고, 한국 문화도 알리고
구독자 기반을 말레이시아 시장으로 옮기면서 2~3년 사이 매출도 세 배 가까이 뛰었다. 면세점이나 관공서, 공기업에서 광고가 들어오며 사업 규모도 커졌다. 최근에는 워너뮤직과 계약해 앨범도 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발매한 블라이미의 첫 앨범이다. 말레이시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유명해진 한국인 가수 한별과 싱어송라이터 윌라이즈가 함께했다.
블라이미는 말레이시아를 넘어 세계를 겨냥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전 세계에 한국의 1020세대 문화를 알리는 것을 목표로 전진 중이다.
“우리는 신생 미디어 스타트업이에요. 스타트업 대부분이 그렇듯 끝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도전들이니까요. 앞으로는 내실을 다져가며 확장하고 싶어요.”(최혜림)
블라이미는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는 뜻의 감탄사다. ‘세상에!’라는 말이 나올 만큼 놀랍고 신선함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양다솔), “섹시하고 매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한주희), “주변에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최혜림) 블라이미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Blim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