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대 문헌의 ‘수완나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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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18:42
증기선이 개발되기 전까지 배를 이용한 지역 간의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선박을 만드는 것도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제대로 찾아가는 것만큼 중요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기 전까지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근거리 항해였고, 되도록 육지 가까이 항해하다가 적당한 항구에 내려 물과 식량을 보충하고 배를 수선해 다음 목적지에 가는 식으로 장거리 항해를 했다. 인도, 스리랑카에서 동남아 방면으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 바로 이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였다. 신드바드가 외국에서 물건을 사다 팔며 이문을 얻기 위해 항해를 한 방식도 이런 근거리 항해였기에 니코바르 제도가 그의 모험담 속 배경이었다는 주장이다. 신드바드 역시 바닷길 교역의 일원이었던 셈이다. 이미 9세기에 쓰인 중국과 인도의 여행기에 안다만 제도에 식인종이 산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신드바드가 니코바르 제도에서 난파했다는 추정은 비단 식인종 때문만은 아니다. <천일야화>에는 신드바드가 여기서 단향 등을 구해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남아는 아랍과 중국에서 귀하게 여긴 값진 향료와 염료의 산지이기도 하다.
신드바드의 배는 왜 인도에 머물지 않고 동남아로 향했을까? 여행기와 모험담에 나오는 동남아는 다종다양한 위험이 도사린 곳이지만 동시에 일확천금의 땅이기도 했다. 동남아가 ‘열대’, ‘미개’, ‘원시’의 땅이라는 상상은 근대의 것이다. 이국인들에게 동남아는 일찍이 “황금의 땅”으로 알려졌다. 정말 황금이 나오는가, 황금을 구할 수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랍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로 떠난 사람들, 인도에서 동남아로 떠난 사람들에게는 동남아가 황금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흔히 동남아의 고대 문명, 동남아의 역사시대는 인도인들이 기원전 2세기부터 대거로 혹은 간헐적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됐다고 한다. 이를 ‘동남아의 인도화’라고 한다. 조르주 세데스라는 프랑스 학자가 처음 주장한 ‘인도화’는 고대 동남아 문명에 미친 막대한 인도의 영향을 말해준다.
인도 사람들은 왜 제 나라를 떠나 앞다퉈 배에 올랐을까? 이 시기는 인도에서 전쟁이 빈번했던 때이다. 오늘날의 중국 간쑤(감숙)성 치롄(기련)산맥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던 월지족 일부가 흉노에게 밀려 박트리아와 페르가나 지방으로 이주하자 그곳에 살던 샤카족이 다시 간다라 지방으로 쫓겨났다. 석가모니가 이 샤카족 출신이다. 월지의 한 부류인 쿠샨족이 기원전 1세기에 쿠샨 왕조를 세우는 것으로 유목민족의 연쇄 이동은 일단락되었다. 이는 먼저 거주하고 있었던 인도인들의 동남아 이주를 촉진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서쪽으로, 아라비아반도 방면으로 가지 않고, 동쪽 동남아로 방향을 잡았던 것일까? 북방에서 이주하는 유목민족의 압박도 컸고, 인도의 지리, 지형, 정치적 요건들도 관계가 있지만 무엇보다 동남아에 대한 환상이 컸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인도 고대 문헌에는 동남아에 ‘황금의 땅’(수완나부미, Suvarnabhūmi), 혹은 ‘황금의 섬’(Suvarnadvīpa)이 있다고 했다. 팔리어로 쓰인 석가모니 본생담(本生譚) 중의 <마하자나카 자타카>(Mahājanaka Jātaka)와 상좌부 불교 성전 <마하 니데사>(Mahā Niddesa)가 그것이다. 또 구나디아가 지은 인도 고대 서사시 <브리하트카타>(Brihatkathā)에도 동남아로 향하는 뱃길과 함께 수완나부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과연 황금의 땅이 어디일까? 대체 어디를 황금의 땅이라 불렀을까? 고대 인도인들이 막연하게 미얀마 남부나 타이(태국) 남부, 혹은 말레이반도를 수완나부미라 불렀다고도 하고, 기원 전후 사람들은 오늘날의 말레이반도, 혹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를 말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들의 추정이 맞는 것일까?
로마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83~168)는 로마와 고대 페르시아의 지명사전을 바탕으로 <지리학>(Geographike Hyphegesis)을 저술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동남아 어디를 황금반도(Golden Khersonese)라고 지칭했는데 훗날 학자들은 이를 말레이반도, 혹은 수마트라라고 비정했다. 멀리는 로마까지도 동남아 어딘가에 황금의 땅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셈이다. 대체 황금의 땅은 어디일까? 정말 황금이 많기는 했던 것일까?